단통법인가 뭔가 덕택에 예전처럼 (잘 찾아보면) 엄청 싸게 전화기를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으나 세상에 어둡건 약삭빠르건 거의 비슷한 값으로 사야하는 세상이 되었다. 백만원 가까이를 투자해야 하니 전화기 바꾸는 일도 고민을 좀 해야하는데 다행히 내가 쓰던 갤럭시 S5 광대역 LTE (줄여서 갤오광이라고들 한다)는 아직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느려지지도 않았고, 어디 떨군 적도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주변의 물건들 중에 스마트폰처럼 유용하게 쓰이는 것도 없다. 알람소리로 잠에서 깨어 바로 밤사이에 별일은 없었나 들여다보고는 차에 타면 티맵을 켜고 출근한다. 화장실에 가거나 회의에 들어가거나 이거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게 종일 끼고 산다. 자려고 누워서도 스마트폰으로 골프중계를 보다가 잠이 드니 본전은 금방 빠진다. 이제 이것으로 안되는 일은 (소위 "생산적"이라고 부르는) 진득하니 앉아서 논문쓰고 그러는 것 뿐인데 조만간 이런 일도 지하철 문앞에 기대어 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노트 5를 살까 고민하던 와중에 갤럭시 S7이 나왔다고 모처럼 선물을 받았으니 내 인생에서 신상 핸드폰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크기가 좀 클까 싶었는데 빠릿빠릿한 거랑 카메라가 좋은 거 두가지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나는 스마트폰을 늘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기 때문에 너무 크면 문제인데 의외로 금방 적응이 된다. 최후까지 고민한 다른 후보는 바로 아이폰인데 아직도 아이폰으로 앱이 나와있는 몇몇 끌리는 제품이 있어서다. 그래도 이제는 iOS 생태계가 좀 거북하기도 하고, 예전처럼 누가 아이폰 쓴다고 그러면 부러운 생각도 없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엣지를 보면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듬) 고민의 기간은 짧았다. 이제 나도 뭐 갖고싶은 게 생기면 그냥 질러버리고, 좀 대충 살아볼 생각이 든다. 내 직장의 최근 변화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깨닫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능력과 시간을 월급을 맞바꿔왔던 것이다. 비젼을 직장과, 보다 엄밀히 말하면 경영진과 공유하는 것은 순전히 덤이자 옵션이었다. 이런 소시민적인 생각을 마흔 살이 훌쩍 넘어서야 하게 되었으니 나도 참 무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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