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

카테고리 없음 2016. 1. 29. 15:09
생선을 면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횟집이나 일식집에 자주 간다. 나는 나이먹도록 입이 여전히 싸구려라서 먹기 아깝도록 아름다운 스시보다는 두툼한 활어회나 세꼬시를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 먹는 것이 더 입맛에 맞지만 슬슬 너무 과식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제하는 추세다. 새우나 갑각류에 알러지가 있기도 하고, 몇년전 아오모리에서 웬 초밥장인이라는 할아버지가 쉴틈없이 쥐어주는 초밥 십수점을 다 받아먹었다가 배가 터져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런 경험을 한 이후로는 일식집 코스요리가 부담스럽다. 한편 언젠가 처음으로 일식집의 방이 아닌 "다찌"에 앉아보았더니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접시에 푸짐하게 차려져나오는 회가 아니라 이것저것 몇 점씩 잘라내어 주니까 맛있는 생선을 더 달라기도 하고 대접받는 느낌도 났다. 이런 식의 메뉴를 오마카세 (お任せ)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알아서 주세요 뭐 그런 뜻이라고 한다. 일단 양껏 먹을 수 있고, 싫어하는 생선은 알아서 빼준다. 그러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잘 대접받았구나 생각이 든다.

세상은 좀 그렇게 살 필요가 있다. 몸에 좋고 맛있다고 내가 아무리 주장해도 남들은 또 다르다. 누구나 자기 취향대로 먹는 것이고, 자기 취향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그런 셰프들의 것이다. 유행따라 적당히 사람들을 선동하고 자기 편으로 만드는 식이다. 그들이 먹고싶은 메뉴를 해서 주면 된다. 듣고싶은 얘기를 해주면 된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잘못은 지적해줘야 한다고 믿지만 현실은 조금 비겁해져야 즐겁고 편안해진다.


그러면서 조직은 쇠락하는 것이다. 위의 취향대로, 시키는 대로 착오없이 일하면 나도 참 편하다. 내 창의나 소신을 접어두고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는 행태는 (비록 조직과 이 세상을 망하게 만들런지 몰라도) 이미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도덕률이다. 일식집에서 맛있게 먹고는 별 생각을 다 한다.



WRITTEN BY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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