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지 않은 시절에 "간장 두 종지"라는 짤막한 컬럼이 조선일보에 실리면서 장안의 화제를 모은 바가 있었다. 회사 근처의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시켰는데 간장 종지를 인당 하나씩 주지 않아서 다시는 안간다는 (어그로성) 글이었는데 때가 인터넷과 sns의 시대이니만큼 갑질의 절정이라느니 그 중국집 도와주러 간다는 등의 반응이 엄청났었다. 욕을 먹는 것에 이골이 났을 조선일보 기자니까 그후로도 꿋꿋하게 컬럼을 매주 싣고계신 한** 기자님을 언제 한번은 꼭 만나보고 싶다. 내가 그 글을 읽고 (우리집에는 일년 구독하면 자전거를 준다는 꾐에 빠진 집사람 때문에 조선일보가 오는데 나 아니면 문앞의 신문을 치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느낀 것은 두가지였는데 이런 일기장에나 끄적일 신변잡기에도 지면을 내어주는구나, 그리고 별것도 아닌 내용을 참 재미있게 글을 쓴다는 점이었다. 이후로 신문은 오는 족족 쓰레기통으로 가지만 이 "마감날 문득"이라는 컬럼이 실리는 주말판만은 빠짐없이 읽고 있다. 조선일보가 어떤 성향인지, 거기 다니는 분들이 어떤 인간들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데 그냥 누구나가 "문득" 겪고 지나가는 생활의 에피소드를 실소가 나오게끔 쓰는 능력자인 것은 알겠다.


나도 글로 밥벌어먹고 사셨던 선친의 덕인지 그럴싸하게 글짓기를 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 학생때는 그런 능력이 있는지 몰랐어서 일기도 숙제로나 써봤고 그 흔한 백일장 한번 입선해본 적도 없지만 첫 논문을 쓸 당시에 (지금 돌이켜보면 잡문에 다 어디서 베낀 문장이지만) 그냥 술술 논문 한 편이 만들어진 것에 놀라지도 않았다. 남들도 다 그렇게들 쓰는 것으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한창 듣던 시절에는 (마침 우리나라에 하이텔이니 천리안이니 하는 인터넷 bbs가 생기던 시절이다) 음반리뷰 같은 것을 열심히 적어올려서 그바닥에서는 나름 유명하기도 했었고, 미국에 살던 시절에는 모 정치잡지에 글을 기고해서 실리기도 했었다. 요즘은 골프나 치고 놀러다니기 바빠서 뜸하지만 논문을 써내야하는 상황이 되면 아직도 한나절 잡으면 하나를 대충이나마 만들어낸다.

그래도 내 글쓰기는 요약정리지 창작은 아니어서 어디다가 글 좀 씁니다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다. "마감날 문득" 수준의, 무릎을 탁 치면서 피식 웃을 그런 글은 쓸 (필요도 없는 직업이지만) 재주가 없다. 십수년도 전에 같은 직장에 다니던 이가 어느날부터 소위 말하는 "신이 내려"서 타인의 미래가 보이는 통에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그만두고 미국으로 가버린 일이 있었다. 참고로 나는 신내림 따위는 믿지 않으며, 그거 일종의 정신병이고 환각을 보는 거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했었지만 주변에 그와 친했던 이들은 거의 도사님 대하듯 했었다. 미국에서는 평범하게 살면서 이제 엔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이 보이거나하지는 않는다고, 그래서 잘먹고 잘자며 잘살고 그런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던 참이다. 그러던 어느날, 모 선생이 갑자기 밤에 내게 카톡을 하더니 손도사가 미국에서 전화를 했는데 "내가" 꿈에 보였다고 했다는 거다. 좀 섬뜩했는데 그래도 일찍 죽을 팔자라는 얘기가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타고난 글재주가 있어서 글이나 쓰고 사실 분이 왜 아직도 이런 일을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은퇴하고는 글을 쓰며 지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덕담을) 전해들었다. 무엇보다도 은퇴할 무렵까지는 살아있을 모양이구나 싶어 반가운 소식이었다.

WRITTEN BY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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