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카테고리 없음 2017. 12. 30. 07:27
나는 그래도 좀 신세대에 얼리어답터 소리를 들었던 터라 밥상머리에서 신문을 펼치는 부류는 아니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란이 여론의 대세로 등극하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신문보다는 화면의 폰트로부터 세상사를 접해왔었다. 그런 내가 지금도 신문을 펼쳐드는 경우는 장거리 비행기를 탈 때다. 관심사에 상괸없이 첫 페이지부터 읽으며 이런저런 상식을 잡다하게 받아들이는 신문에 비해 인터넷은 내가 좋아하는, 원하는 기사만을 읽을 수 있어서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만큼 시야가 좁아진다라는 느낌도 받는다. 아무튼 나는 비행기에 타면 소위 조중동과 한겨레, 스포츠신문까지 챙겨서 한두시간쯤을 때운다.

예전에 아버지가 살아계실 당시에는 우리집에서 조선일보를 볼 일이 없었다. 글쓰는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당시에도 발행부수에서 독보적으로 일등을 하던) 조선일보에 대해 너무 글을 잘써서 독자를 현혹시키는 신문이라고 평하셨었다. 나이가 들어 공감하는 것이 여타의 신문들에 비해 조선일보는 명문장의 향연이다. 별것도 아닌 신변잡기 수준의 글에서도 대가의 필체로 은연중에 이 나라는 이제 큰일났구나, 좌빨 종북들이 이전 세대가 이루어놓은 모두를 말아먹겠구나 그런 메시지를 깔아놓고 있다. 이쪽이 옳든 저쪽이 진정이건 여하튼 조선일보를 읽으면 어쩜 이렇게 글을 재미있고 수준높게 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빠져들게 된다.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인데 다들 네이버만 들여다보는 요즘 세상에서도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여전해서 언젠가 모 토론회의 실무자로 일하며 여기저기 언론사에 초청장과 보도자료를 뿌렸으나 기자들이 별로 오지 않아서 참담했던 심정을 얘기했더니 모 군소언론사 기자를 하는 친구 왈 "조선일보는 왔나?", 응 거기는 왔더라, "그러면 된 거야, 다른 언론사는 필요없어" 이딴 대답이었다.


글로 혹세무민하건, 나라를 생각하는 충성의 명문장이건 나처럼 단순한 사람은 그저 재미있게 술술 읽혀져가는 맛에 조선일보를 본다. 직업상 사실의 열거만이 필요한 글을 논문이라는 명칭으로 종종 쓰게되는데 사상이나 취향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나처럼 졸필도 그럭저럭 글을 쓰는 것이지만 사실 읽는 이들이 공감해주길 바라면서 쓰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남들을 설득시킬 능력이 부족하고, 더구나 그들의 딴지를 무시하지도 반박하지도 못한다. 조용히 들어앉아서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고, 골프나 치러다니는 게 내 본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WRITTEN BY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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